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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이 빚은 명품 경남 밀양얼음골 마을

    석골사

    석골사

    : 신라시대의 확실하나 창건 년연(年沿)등이
      소실됨으로 미상,현건물은 1962년 재건 한 것임

    : 비허사(備虛師) 추정

    : 조계종 통도사 말사

    : 5명

    : 선우스님(김건욱 : 1987년 ~ )

    석골사는 신라 진흥왕 12년 비허선사가 창건했다고 하여 일설에는 신라 혜공왕 9년 법조선사가 창건했다고도 함. 임진왜란 때 밀양부사 박진이 이곳에서 흩어진 군사를 다시 모으고, 밀양사람 손가양, 이경승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던 유적지이기도 하다.
    신라 진흥왕 12년(560년)에 비허선사가 창건하였고 일명 석굴사, 노전사, 석동사라는 이름도 전해온다.
    석골사를 산 봉우리들이 화심을 꽃잎이 감싸고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함화산, 석골사가 있다 해서 석골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석골산의 남쪽 밀양편에는 석골사가 먼저 자리하여 북쪽의 운문사와 서쪽의 봉정사를 거느리고 있다. 산맥은 정상에서 동쪽으로 24m를 흘러내려 아랫재에서 가지산과 정상에서 서쪽으로 3.5㎞거리의 억산과 마주치면서 석골 계곡과 운문 계곡을 파 놓았다. 산세가 험준하고 경관이 빼어나서 때묻지 않은 자연을 보기위해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곳 이다.

    유래

    석골사

    운허(耘虛)가 편저한 불교사전(1961년간)에는 신라 혜공왕 9년(773)에 법조(法照)가 창건했다고 했으나 출전의 근거를 밝히지 않았고 중국 당나라 때 고승으로 법조라는 사람이 있으나 동방포교(東方布敎)의 사실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그 기록은 문헌이 없어 자세한 연초를 알 수는 없으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하여 이 절이 신라 사찰이었으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보양선사(寶壤禪師) 석굴사의 비허사(備虛師)와 더불어 형제가 되어 봉성.석굴.운문 등 3사의 연봉을 서로 왕래하면서 교분을 가졌다는 내용이 있다.
    이 기록을 토대로 고찰 해보면 보양은 고려의 건국을도와주기 위하여 정도 대성에서 태조 왕건에게 산적 격퇴의 작전을 일러준 명승으로 비허는 그와 법형제가 되며 같은 시기의 인물이다.
    따라서 비허가 주선한 석굴사는 적어도 왕건이 당시 후백제의 견훤을 치기 위하여 동정(東征)한 927년(신라 경순왕1년) 이전에 창건된 신라 사찰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절의 위치는 산세가 험악하고 큰 바위가 즐비한 곳으로 큰 가람이 들어설 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미루어 볼 때 오히려 석굴이라는 사명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당시 이름 높은 선승(禪僧)에 의하여 개창한 산중에 조그마하게 이룩 한 수도암(修道菴)이었으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석골사

    이 사찰을 중심으로한 근처의 마을과 산에는 임진왜란 때에 관군과 의병이 함께 주둔하여 왜병과 싸웠고 인근의 백성들이 집결하여 피난한 곳이었다는 기록이 '밀주구지'(密州舊誌) 등에 보이고 있는 것은 이곳 석동의 요새적인 산새와 아울러 이 적의 유서를 더해 주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유일하게 전도를 모면한 사찰이었다.
    은퇴한 오한 손기양의 시구(詩句)에서 당시 사찰의 유심(幽深)했던 경관을 알 수 있고 고향에 은둔한 작자의 행적에 비추어 광해 년間(1608~1623)까지 이 절이 보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뒤 불교의 쇠퇴와 함께 자산이 별무한 이 절의 유지가 어려워지자 거승(居僧)은 흩어지고 건물은 퇴학하여 유허만 남게 되었다.
    1735년(영조11)에 함화당(含花堂) 의청이라는 중이 개산조(開山祖)인 비허조사(備虛祖師)의 선적(禪蹟)을 사모하여 그 옛터에다 사우(寺宇)를 중창하고 다시 향화를 받들었으며 뒷산인 일출봉 아래 상암도 중수하여 함화암이라는 액호를 걸고 참선하는 도량으로 삼았다.
    그 뒤 이 절에는 회적당(晦跡堂)이라는 법호를 가진 중이 주석(住錫)했다가 입적한 사실을 사찰 경내에 유존하는 종형(鐘刑)의 부도탑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함화(含花)가 중창한 법당은 1950년까지 보존되었으나 6.25동란 직전 공비의 소굴이 된다하여 불을 질러 없애 버렸다. 현재의 건물은 1962년에 이 곳 신도들의 성금으로 재건하였으나 법당과 료사(燎舍)한 채씩이 그 전부이며 고적의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찾아오시는길

    경주.울산방면
    언양IC→석남사(국도24호선) → 가지산도립공원 (얼음골) → 설골사 입구 → 남명삼거리
    대구방면
    경산IC→청도(국도25호선)→상동면사무소→긴늪삼거리(국도24호선)→금곡→ 석골사 입구→ 남명삼거리
    창원.마산방면
    동창원IC→진영(국도25호선)→밀양시청→긴늪삼거리(국도24호선)→금곡→석골사입구→ 남명삼거리
    시외버스 이용시
    밀양시외버스터미널 07:00 ~ 19:50(30분간격) 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