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마을

  • HOME
  • 로그인
  • 마이인빌
  • 메일
  • 고객센터
  • 마을안내 마을체험 마을장터 마을관광 마을공간
    천년이 빚은 명품 경남 밀양얼음골 마을

    마을변천사

    재미있는 설화가 있는 거북바위

    삼양리와 남명리는 16세기 초 실혜촌과 천화리라는 방리로써 19세기 초까지는 산내면의 원지명인 천화면, 천화산내면의 중심부락이었다.
    옛날 실혜촌의 위치는 지금의 남명리 마전 부락을 포함하여 삼양리 일대인데 실혜산의 아랫마을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실혜산은 현재 이른바 영남알프스의 주봉인 가지산을 말하는 것이며, 화산의 분화구임을 나타내는 천화산, 석면산, 석남산으로도 불리는 명산이다.
    밀주지(密州誌) 기록에는 실혜촌은 본래 부요(富饒)라 일컬었는데, 그것은 마을 주민들의 생활이 윤택하고 큰 부자가 살았기 때문이라고 하다. 그 후 실혜(實惠)는 다시 시례(詩禮), 시산(時山)으로 표기 되었고, 근대에 이르러 남명리(마전, 동명, 내촌)와 삼양리(상양, 중양, 하양)로 구분하였다.

    설화 및 유래

    원덕이동네부자

    마전(말바탱이) 남쪽에는 원덕이라는 큰 부자가 살았다고 하여 원덕이 동네라고 했다. 이 부잣집에는 항상 과객과 거지떼들이 들락거려 주인이 매우 귀찮아 했는데, 어느 날 도력(道力)이 있어 뵈는 한 노승이 동냥을 하러 이 집으로 왔을 때, 주인의 며느리가 이 노승에게 간청하기를 "동냥은 얼마던지 드릴 터이니 우리 집에 오는 과객과 걸인들의 발길을 끊게 해달라"고 하였다. 노승이 부탁을 받고는 동네에서 마주 바라다 보이는 구연동 입구에 재반갓이 바른 데가 있는데 이 곳(시례호박호 위)의 거북바위가 원덕이 부잣집과 마주보고 있었다. 그래서 노승이 거북바위 반석을 지팡이로 내리치니 그 속에서 피가 흘러내렸는데 그 뒤 부자는 망하고 집터는 사태가 져 매몰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소자문들(孝子門坪)

    마전 서북쪽에 있는 들 이름이다. 구한말에 이 곳에 거주한 효자 사영진의 정문이 있었던 자리라고 하여 생긴 지명이다. 이 들판의 뒤쪽 마을(하양)에 청주사씨가 살았다. 사 효자는 그 부모를 위하여 생전 사후를 막론하고 지극히 효성을 다하였다. 척망제(陟望齊)라는 재실을 지어 추모를 했으나 모두 없어지고 터만 남았다. 소자문은 효자문의 변음이며, 이 들에 물을 대는 보를 소자문들보(孝子門坪洑) 라고 한다. 마전(말바탱이) 남쪽에는 원덕이라는 큰 부자가 살았다고 하여 원덕이 동네라고 했다. 이 부잣집에는 항상 과객과 거지떼들이 들락거려 주인이 매우 귀찮아 했는데, 어느 날 도력(道力)이 있어 뵈는 한 노승이 동냥을 하러 이 집으로 왔을 때, 주인의 며느리가 이 노승에게 간청하기를 "동냥은 얼마던지 드릴 터이니 우리 집에 오는 과객과 걸인들의 발길을 끊게 해달라"고 하였다. 노승이 부탁을 받고는 동네에서 마주 바라다 보이는 구연동 입구에 재반갓이 바른 데가 있는데 이 곳(시례호박호 위)의 거북바위가 원덕이 부잣집과 마주보고 있었다. 그래서 노승이 거북바위 반석을 지팡이로 내리치니 그 속에서 피가 흘러내렸는데 그 뒤 부자는 망하고 집터는 사태가 져 매몰되었다는 전설이 있다.